고불총림 백양사
백양사 대웅전
백양사는 1400여년전 백제시대의 고찰로 유구한 역사와
주변의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이 높으며
또한 산내 10여개 암자 중 유서 깊은 운문암은 고려시대 때부터 납자들의 정진도량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만 우리나라 대부분 사찰들이 그러하듯 백양사 역시
창건과 연혁을 전하는 자료가 충
분하게 전하지 않는데다
정토사(淨土寺)· 백암사(白巖寺) 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존재했던 사찰이기 때문에
그 역사에 관한 서술은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백양사가 언제 창건되었으며,
그 창건주가 누구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다음의 자료를 검토해 본다.
백양사 극락보전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이 고려말 1337년(우왕 3)에 지었다는 '백암산정토사교루기(白巖山淨土寺橋樓記)'의 일부 내용을 보면, 오직 이 산은 장성군 북쪽 30리에 있는데 그 이름을 백암(白巖)이라 하였으며 암석이 모두 흰 색깔이라서 그렇게 이름 하였다한다.
석벽은 깎아지른 듯 험하고 산봉우리는 중첩하여 맑고
기이하며 웅장한 모습이 실로 이 지역의 명승지가 될 만하므로 신라 때의 어떤 이승(異僧)이 처음으로 절을 짓고 살면서 이름을 백암사(白巖寺)로
하였다.
중국 송나라 경평 연간(423~424)에 이르러 정토선원(淨土禪院)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그 문도인 중연선사가 이를 이어 전당과 문무, 방장실, 요사 등 80여 칸을 다시 지었다.
중국 송나라 경평 연간(423~424)에 이르러 정토선원(淨土禪院)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그 문도인 중연선사가 이를 이어 전당과 문무, 방장실, 요사 등 80여 칸을 다시 지었다.
중연선사의 문도가 차례로 전해 오다가 일린(一麟)스님이
그 사찰을 주관하여 처음의 법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실린 '백암산정토산교루기'는 백양사의 창건 내용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이며 여기서 백양사 창건과 관련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실린 '백암산정토산교루기'는 백양사의 창건 내용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이며 여기서 백양사 창건과 관련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창건은 신라 때 이루어졌고 창건주는 법명은 알 수
없지만, '이승'이라고 표현된 점으로 보아 상당한 이적행(異蹟行)을 해온 승려일 것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백양사의 창건 때 이름은 '백암사'였으며, 창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토선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또한 창건 이후 중연선사와 일린스님에 의해 백양사의
법맥이 계속 이어져 왔음을 살펴볼 수 있다.
연못에 비친 백양사 쌍계루의 가을 풍경
물론 정도전이 지은 이 자료의 모든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할 것인가는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특히 백암사에서 정토선원으로 사찰명이 바뀌는 시기가 중국
남송시대인 5세기 초반이라고 서술한 부분은 시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대상이다.
이 시기는 신라의 불교 공인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이며,
더욱이 그 같은 상태에서 신라 스님이 백제 영토에 들어와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양사의 창건주가 신라 스님이었다는 점 그리고
백암사와 정토선원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임에 분명하다.
극렬한 배불론자였던 정도전의 '백암산정토사교루기'가
백양사 창건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또 이 기록은 이후에도 그대로 전승되어 오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 내용이 좀 더 구체화된다.
일반적으로 통하는 백양사의 유래는 백양사는 백제 무왕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명찰로 본래 이름은 백암사였고, 1034년 중연선사가 크게 보수한 뒤 정토사로 불려졌다.
일반적으로 통하는 백양사의 유래는 백양사는 백제 무왕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명찰로 본래 이름은 백암사였고, 1034년 중연선사가 크게 보수한 뒤 정토사로 불려졌다.
조선 선조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한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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