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사찰, 건축물

*안양사(경북 영주)

칼멘9988 2013. 10. 31. 07:35

*안양사(경북 영주)

 

 

경북 영주시 하망동 135-1에 소재하고 있는 안양사는 고불각(古佛閣) 석조여래좌상과

 

연화좌대석의 유래를 통해 안양사의 역사를 추정하고 있다.

이 석조여래좌상 및 연화좌대석의 조성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이며 향토사학자 최현교(崔賢敎) 선생의 사설에 따르면 두 석불은 원래 신라시대 조신대사가 창건한 정토사의 불상이었다고 하며 입상석불과 함께 영주초등학교 앞에 임시 위치 하였던 것을 단기4304(서기1971)년에 입상석불은 영주도립도서관 마당동산으로 좌석불상과 좌대석은 안양사로 옮겨왔다.

이 불상의 현고는 84cm, 어깨쪽은 58cm, 무릎폭은 97cm, 좌대석 높이 20cm, 지름 101cm, 기타 입석사자 1개, 원(圓) 주춧돌 2개, 4각 주춧돌 2개는 원래 이 터에 있었다고 하며 법당에는 조선후기 조성된 독특한 독성탱화 등이 있다.

현 안양사 주위전역의 터는 원래 신라사람 조신의 꿈 산실인 정토사 터로서 려말선초까지 존속해 오다가 태종6년에 영주군수였던 하륜(河崙)의 상소로 태종6년 하루만에 전국 3천 6백여 사찰을 폐사할 당시에 포함되었는데 불기2496(1952)년에 안경우 대사가 정토사지 일부 매입한 후에 현재까지 연차적으로 중창중이다.

특히 안양사에는 약 300년 전 중국 청나라 고종황제 건륭46년 제위 60년(1736~1796) 조선왕조 영조11년에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하여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오백 나한이 봉안되어 있다.

이 오백나한은 중국 복건성에서 나는 수산옥(水山玉)을 캐어 조성된 것으로 당시 유명한 조각가 송경(宋耕)을 중심한 작가 다수인이 청나라 고종황제의 어명(御命)을 받들고 5년간 걸쳐서 조성 하였다고 하는데 전사(傳史)에 의하면 공사 기간 중 조각가 전원이 한번 외출 없이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매일 목욕재계 하며 일념의 발원과 청정한 심혼(心魂)으로서 정기일에 오백나한상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또한 오백나한이 깔고 앉은 좌대 또한 희귀(稀貴)한 것이다. 목질이 보통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중국 보타산에서 자라온 수백년 이상 묵은 향나무 뿌리를 채취하여 500여개의 좌대를 만들었다고 하니 보통공력이 아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이 오백나한은 나한 한분 한분의 모양새가 다 다른 소위 천태만상(千態萬象)으로 현상(現相)된 자비엄상(慈悲嚴相)으로 빛나며 최상성인(最上聖人)들의 심혼(心魂) 령기(靈氣)가 도는 듯 혹자는 코끼리 타고 혹자는 용, 범, 사자, 말, 소, 고래, 악어, 낙타, 봉, 학, 구름, 산 등을 타고 표상되어 있어 그 조형미술의 뛰어난 솜씨는 인작(人作)일까 천작(天作)일까 의심할 정도의 걸작품이다.

 

 

 

안양사 전경 

 안양사 극락전과 오백나한전

 

 

안양사 오백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