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사찰, 건축물

*고운사(경북 의성)

칼멘9988 2013. 11. 7. 08:16

 

*고운사(경북 의성)

 

경북 의성군 단촌면 비등산에 소재하고 있는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孤雲을 빌어서 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으며 그 당시 사찰의 규모가 五法堂十房舍(5동의 법당과 10개의 요사채)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보물 제246호)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제28호)은 도선국사가 성한 것들이다.

특히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이다.

옛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지장보살님의 원만자비하신 풍모는 물론이거니와 명부십대왕의 상호와 복장도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자랑한다.

일제시대에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고 지금은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한 60여 대소사찰들을 관장하고 있다.

사세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간의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했던 대도량이 해방이후 쇄락하여 많은 사찰재산이 망실되고 지금은 이십여명 대중이 상주하는 교구본사로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10여년전부터 중창불사의 뜨거운 원력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낡은 건물들을 수리 및 단청하여 지금은 위풍당당한 본산의 위상과 소박하고 절제된 수행지로서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운사 전경

 

 고운사 극락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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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사 전경

 

 

 

 

 

 

 

 

 

 

 

경북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소재하고 있는 태조산 도리사는 신라 19대 눌지왕(417)대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하여 처음 세웠다는 해동불교의

발상지이다.

아도화상은 중국에서 현장화상에게 선도를 배워 19세에 자명을 받아 선산(지금이구미시) 도개부에 있는 모례의 집에서 굴실을 지어 거쳐하다가 시봉자가 늘어나게 되어 진기승지를 찾아 결암봉불 하던중 이곳에 오색도화가 설중에 만개하여 절 이름을 도리사라 하니 해동 최초 가람으로 신라불법의 초전법륜지인 것이다.

신라 불교 초전법륜지로 성지화된 이곳은 1976년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려올 때 모셔온 세존 진신사리가 세존사리탑 보수 공사중 금동육각사리함에 봉안되어발견되었다.

금동육각사리함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며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현재 직지사 성보 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1968년 봄 아미타 좌상 도금시 불상 밑에서 1731년 영조 7년 때의 중수기가 발견되었으며 극락전 뜰 앞에 있는 보물 제470호인 도리사 화엄석탑은 일반적인 석탑과도 특이한 양식이다.

그 형태는 여러 개의 석주를 맞대어 기단부를 형성하였고 다시 그 상층부에 중층의 탑신부와 상륜을 배치한 특수형식으로 귀중한 문화재로써 옛 향기를 품고 있다.

그리고 아도화상이 도를 닦았다는 좌선대 옆에는 아도의 사적비겸 자운비가 있는데 앞면에는 인조 17년에 뒷면에는 효종6년에 새긴 아도의 사적이 음각되어 있다.

현존 건물은 법당 극락전과 삼성각을 비롯하여 선원과 2동의 요사, 그리고 세존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도리사 극락전 내부

 

 

 

 

 

 

 

 

 

 

 

*대둔사(경북 구미)

 

 

경북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 복우산(伏牛山) 동쪽에 소재하고 있는 대둔사는 신라 눌지왕 30년(446)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

 

고려 고종 18년(1231)에 몽고족의 침해로 불타 없어져, 25대 충렬왕의 아들이 왕소군(王小君)이

 

 재건하였다.

 

조선 선조 39년 병오년에 사명대사가 중수하여 승군(僧軍)이 주둔하니 암자가 10여개소나 되었다.

 

 

일제시대때 시왕전(十王殿)하고 불상을 진주의 어느절로 옮겨 갔으며,

 

사찰은 퇴폐되어 여러차례 신도의 모금으로 중수되었다.

 

절 뒷산 허리에 청련암(靑蓮庵)이란 작은 암자가 아름다웠으나 1922년경에 암자를 해체하였다.

 

대웅전은 양식으로 미루어 보아 17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며, 주존인 석가여래좌상은

 

조선시대의 좌불로 대웅전과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이라고 하며

 

, 대웅전은 1982.8.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대둔사 전경

 

 

대둔사 명부전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