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에 신라의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왕자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창건되었는데,
처음 이름은 진여원(眞如院) 이었다.
자장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 성지로서 그 이름을 빛내면서 마침내 오류성중(五類聖衆) 곧 다섯 부류의
성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신앙화되기 시작하던 즈음으로 이 때의 창건 설화를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더불어 저마다 일천 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 에 이르러 여러 날
놀다가 태화(太和) 원년(元年)에 형제가 함께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형 보천태자는 오대산 중대 남쪽 밑 진여원 터 아래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으며,
아우 효명은 북대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다. 두 사람은 함께 예배하고
염불하면서 수행하였으며 오대에 나아가 공경하며 참배하던 중 오만의 보살을 친견한 뒤로, 날마다 이른 아침에 차를
달여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
이 때, 신문왕의 후계를 두고 나라에서 분쟁이 일자 사람들이 오대산에 찾아와 왕위를 이을 것을 권하였으나 보천태자가
한사코 돌아가려 하지 않자 하는 수 없이 효명이 사람들의 뜻을 좇아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성덕왕(聖德王)이며 왕이 된
효명태자는 오대산에서 수도하던 중에 문수보살이 여러 모습으로 몸을 나타내 보이던 곳에 진여원을 개창하니 이 곳이
지금의 상원사이다.
한편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불교에 귀의하여 그 잘못을 참회하기 위해 많은 불사를 행하였으며
나라에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여 불서의 간행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는데 이런 세조는 오대산에서 두 번의
이적을 체험하였다.
하나는 지병을 고치려고 상원사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나서 병이 나은 것이고 또 하나는 상원사
참배중에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일화가 그것이다.
이렇듯 세조와 상원사는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1984년에 발견된 문수동자 복장에서는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문수동자상을 봉안한다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전국에서 선남선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불교 성지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상원사 전경
상원사 문수전의 문수보살과 문수동자
상원사 동종
상원사위 세조의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