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사
-한국 불교계를 호령했던 선승을 배출한 고찰
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410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김용사는 “운달산김용사사적서 (雲達山金龍寺事蹟序)”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10년(588) 운달 조사 (蕓達祖師)가 개산하여 절 이름을 운봉사(蕓峰寺)라 하였다고 되어 있다.
또 괘불화기 (掛佛畵記 ,1703년)에도 운봉사라 기록하고 있어 김용사의 본래 절 이름인 운봉사는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추정된다.
김용사가 절 이름이 운봉사에서 김용사로 바뀐 연유는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지어 이곳 운봉사 아래에 피신하여 숨어 살면서 신녀가 (神女家)를 만나 매양 지극한 정성으로 불전에 참회하더니 한 아들을 낳아 이름을 용이라 하였으며 그 이후부터 가운이 크게 부유해져 사람들은 그를 김장자(金長者)라 하였고, 이로 인하여 마을 이름 또한 김용리(金龍里)라 하고 운봉사 역시 김용사(金龍寺)로 개칭하였다는 기록이다.
이런 김용사는 인조2년에 수행 공덕으로 고명했던 혜총선사가 제자들과 힘을 모아 이룩하였으며 그 후 소실된 것을 의윤, 무진, 대휴의 세분 대사가 옛 모습을 되살려 놓아 번창 시에는 48동에 건평 1,188평이나 되었으나 현재는 대소 전각 30여 채만이 남아있다.
그러나 김용사는 대웅전을 위시한 고색창연한 전각들과 장엄한 모습의 사천왕 신장상이 방문객을 압도하고, 인조 27년 설잠대사가 조성한 웅대한 대웅전의 불상, 성균대사가 만든 규모가 웅대하며 기예 또한 현묘한 후불 탱화, 고종26년에 사증대사가 조성한 거대한 쾌불탱화를 비롯하여 죽은 사람의 생전의 일들이 기록 영화처럼 비쳐진다는 거울 등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그 옛날의 창성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전각 중 경흥 강원 건물은 국내 최대 강원건물의 하나로 300명을 동시에 수용 할 수 있는 온돌방으로서 그 부엌아궁이는 어린 학생들이 걸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크다.
김용사의 석탑과 석상은 절 뒤에 세워져 있는데 그 이유는 선익을 진압한다는 뜻이며 혹은 산혈의 촉맥을 보우하는 뜻이라고 하며 특히 김용사의 물은 물빛이 우윳빛과 흡사하여 신기한 느낌을 주는데 그 이유는 사찰터가 와우형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김용사는 성철 스님을 비롯하여 한국 불교계를 호령하던 많은 유명한 선승들을 배출하였다.
또 절 입구에 지은 지 300여년 된 해우소가 있는데 토속적인 목조 건물로 특별하다.
김용사 전경
김용사 대웅전
김용사 마애석불
김용사 해우소
*윤필
윤필암은 1380년(고려 우왕6년)에 각관(覺寬)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이래 참선 도량으로 명맥을 유지하여오고 있으며 1645년 서조와 탁잠, 1765년 야운, 1885년 고종의 명으로 창명이 각각 중건하였으며 1980년대 초에 모든 건물을 새롭게 건축하여 현재는 비구니들의 수도 도량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윤필암에는 법당인 사불전(四佛殿)과 선불장(選佛場) 등의 승당이 있고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3층 석탑이 사불전 뒤의 암반 위에 서 있는데 특히 사불전에는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그 자리에 벽면을 유리로 설치하여 법당 안에서 사불암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아 사불암까지 가지 않고도 사면불상에 참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특히 윤필암은 성철 스님이 광복되던 해 도반인 청담 스님의 둘째 딸인 묘엄 스님에게 사미계를 준 곳이기도 하다.
윤필암 전경
윤필암 사불전
사불암
사불전에서 바라본 사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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