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나이 들어 가는 귀가 먹은 재상(宰相)이 있었다.
어느 달 밝은 여름밤, 잠이 오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사방을 돌아다녔다.
이때 후원 평상위에 한 동비(童婢)가 발가벗은 채 혼곤히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조용히 그 용모와 하문(下門)을 살피니 천하일색이었다.
이 여종은 손자며느리의 교전비(轎前婢)였다.
이튿날부터 노재상은 그 여종을 보기만 하여도
흠모하고 사랑하는 정이 샘솟아 누가 봐도
그 좋아하는 정도를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아들 내외가 이를 알고 서로 상의했다,
"부친께서 그 여종만 보면 그와 같이 귀여워하고 사랑하시니,
그 아이로 하여금 하룻밤
수청을 들게 하여 위로해 드리는 것도 효성을 다하는 길이 아니겠소?"
그래서 그 여종에게 분부하였다.
"너는 오늘 저녁에 대감마님을 모시고 수청들라."
그 날 밤 아들 내외가 노재상을 걱정하여
창밖에서 방안 동정을 살피고 있었더니
재상과 여종이 말햐는 것이 들렸다.
"들어갔느냐 ?"
"들어가지 않았사옵니다.",
잠시후 또 들렸다.
"들어가느냐 ?"
"들어가지 않사옵니다."
아들이 이를 답답히 여겨서 소리를 낮추어 분부하였다.
"이번에 물으시면 들어갔다고 하라."
잠시후 들렸다.
"들어가느냐 ?"
"들어갑니다.",
"좋고 좋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