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사찰, 건축물

오대산 상원사

칼멘9988 2013. 9. 14. 08:59

오대산 상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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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전경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에 신라의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왕자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창건되었는데, 처음 이름은 진여원(眞如院) 이었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권속을 거느리고 살고 있다는 중국 산서성 청량산의 별칭인데

그곳에서 자장율사가 유학했고 귀국하여 이 산의 형세를 보고 중국의 오대산과 너무나 흡사하여

 이름을 오대산이라 이름 붙였다고 하며 오대산은 이후 이른바 “문수보살”의 오대신앙 본산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연유로 상원사는 주 법당을 “문수전”으로 하여 문수보살을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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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전경

 

문수전의 문수보살(문수동자상)은 세조가 계곡 물에 몸을 씻을 때 등을 밀어주어

 등창을 낮게 해준 동자 모습의 문수보살의 현신을 세조가 기억한 대로 조각했다고 하며

이 문수동자상(국보 32호)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국내 유일의 동자상으로서 천진스러움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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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문수동자좌상(국보32호)

 

 

높이 98cm의 이 문수동자상은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1466년(세조12년)에 만들어 모셨다고 되어 있는데 그 형상은 “징관대사”의 “화엄경소”에

“문수는 머리에 5불관(五佛冠)을 썼는데 정수리에는 5방으로 상투를 나누었다”고 한 상투 동자형이다.

또한 1984년에 발견된 문수동자 복장에서는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문수동자상을 봉안한다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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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영산전

 

한편 자장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 성지로서 그 이름을 빛내면서 마침내

오류성중(五類聖衆) 곧 다섯 부류의 성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신앙화 되기 시작하던 즈음이다.

이 때의 창건 설화를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더불어 저마다 일천 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 에 이르러 여러 날 놀다가 태화(太和) 원년(元年)에 형제가 함께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형 보천태자는 오대산 중대 남쪽 밑 진여원 터 아래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으며, 아우 효명은 북대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다.

두 사람은 함께 예배하고 염불하면서 수행하였으며 오대에 나아가 공경하며 참배하던 중

오만의 보살을 친견한 뒤로, 날마다 이른 아침에 차를 달여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

이 때, 신문왕의 후계를 두고 나라에서 분쟁이 일자 사람들이 오대산에 찾아와

 왕위를 이을 것을 권하였는데 보천태자가 한사코 돌아가려 하지 않자 하는 수 없이

 효명이 사람들의 뜻을 좇아 왕위에 올랐다.

그가 성덕왕(聖德王)이다.

왕이 된 효명태자는 오대산에서 수도하던 중에 문수보살이 여러 모습으로 몸을 나타내 보이던 곳에

 진여원을 개창하니 이 곳이 지금의 상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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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동종(국보 221호)

 

고려시대에는 상원사가 어떠한 중창의 발자취를 걸어왔는지 밝히는 자료는 없으나

이색(李穡)의 “오대 상원사 승당기(五臺上院寺僧堂記)” 에는

“고려말 나옹스님의 제자라고 알려진 영로암(英露庵) 이라는 스님이 오대산을 유람하다가

터만 남은 상원사를 중창하였다” 고 적혀있다.

고려말부터 일기 시작한 척불(斥佛) 정책은 조선시대에 들어 더욱 거세어져

불교는 극박한 박해를 받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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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가 계곡 맑은 물에 몸을 담갔는데 그 때 옷을 걸어 놓았다는 관대걸이

 

태종은 승려의 도성 출입을 금지하고 11종(宗)이던 불교 종파를 7종으로 통합하는 등

척불에 앞장섰으나 만년에는 상원사 사자암을 중건하고 자신의 원찰로 삼았다.

또 나아가서는 권근(權近) 에게 명하여 “먼저 떠난 이의 명복을 빌고 후세에까지

그 이로움이 미치게 하여 남과 내가 고르게 불은(佛恩) 에 젖게 하라” 고 하였다.

이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불교에 귀의하여 그 잘못을 참회하기 위해

많은 불사를 행하였으며 나라에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여 불서의 간행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다.

세조는 오대산에서 두 번의 이적을 체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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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이 있음을 알려 세조의 목숨을 보전케 한 고양이상

 

지병을 고치려고 상원사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나서 병이 나았고, 상

원사 참배중에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일화가 그것이다.

이렇듯 세조와 상원사는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근세에는 방한암 스님이 오대산으로 들어온 뒤로 상원사에서 이십칠 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수도 정진하였으며 수련소를 개설하여 후학 양성에 진력하였다.

오늘날에도 전국에서 선남선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불교 성지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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