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사찰, 건축물

*화엄사(전남 구례)

칼멘9988 2014. 2. 2. 09:55

*화엄사(전남 구례)

 

 

화엄사의 창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544년(신라 진흥왕 5)에

 인도 승려 연기(緣起)가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시대는

 분명치 않으나 연기(煙氣)라는 승려가 세웠다고만 전하고 있다.

670년(신라 문무왕 10)에는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화엄10찰(華嚴十刹)을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이 화엄사를 중수하였다.

그리고 장육전(丈六殿)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石經)을 둘렀다고 하는데, 이때 비로소

화엄경 전래의 모태를 이루었다.

 

사지(寺誌)에서는 당시의 화엄사는 가람 8원(院) 81암(庵) 규모의 대사찰로 이른바 화엄 불국세계(佛國世界)를

이루었다고 한다.

신라 말기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수하였고 고려시대에 네 차례의 중수를 거쳐 보존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승려들 또한 학살당하였다.

범종은 왜군이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섬진강을 건너다가 배가 전복되어 강에 빠졌다고 전한다. 장육전을 두르고

 있던 석경은 파편이 되어 돌무더기로 쌓여져오다가 현재는 각황전(覺皇殿) 안에 일부가 보관되고 있다.

1630년(인조 8)에 벽암대사(碧巖大師)가 크게 중수를 시작하여 7년 만에 몇몇 건물을 건립, 폐허된 화엄사를

다시 일으켰고, 그 뜻을 이어받아 계파(桂波)는 각황전을 완공하였다.

 

대개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이 절은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主佛)로 공양한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2호인 석등(石燈), 국보 제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이 있으며, 보물 제132호인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 보물 제133호인 서오층석탑, 보물 제300호인

 원통전전 사자탑(圓通殿前獅子塔),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구층암(九層庵)·금정암(金井庵)·지장암(地藏庵)이 있다.

 

 

화엄사 대웅전(보물 299호) 전경

 

 

우리나라 불전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화엄사 각황전(국보 67호)

 

 

세계에서 가장 큰 각황전 앞의 석등(국보 12호)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국보 35호)

 

 

 

 

 

 

 

쌍계사 대웅전 전경

 

 

 

쌍계사 9층 석탑 - 이 탑에는 고산 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 3과와 산내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 2과와 전단나무로 조성한 부처님 1분을 모셨다.

 

쌍계사(雙磎寺)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선종(禪宗)의 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 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혜소 진감(眞鑑)선사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어 선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시었으니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쌍계사는 국보 1점(진감국사 대공탑비-국보47호), 보물 3점(대웅전-보물 500호, 쌍계사 부도-보물 380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925호) 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청학루, 마애불, 명부전, 나한전 등의 많은 문화유산, 칠불암, 국사암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25개 본사중 제13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쌍계사는 여러 문화재외에도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쌍계사 입구 근처에는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가 있고,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도 '차시배지(茶始培地)' 기념비가 있다.

차는 신라 선덕여왕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여왔는데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하였다고 한다.
현재 혜능대사의 정상이 모셔진 금당(金堂)에 금당선원이 있어 눈푸른 납자들의 정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통강원(傳統講院)과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설치되어 바야흐로 선맥과 강맥, 그리고 율맥의 법통이 바로선 수행도량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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