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장사(경북 상주)
경북 상주시 내서면 북장리 38번지 천주산(노악산의 서편)에 소재하고 있는 북장사는 상주 4장사(남장사, 갑장사, 승장사 - 현재는 없음) 조계종 산하의 전통사찰이다.
북장사 사적기에 의하면, 천주산이라 함은 산 위에 수미굴(須彌屈)이 있고 그 굴 가운데에 저절로 생긴 돌기둥이 있는데 아래는 좁고 위는 넓어서 마치 하늘을 괴어 받친 기둥처럼 보이기 때문에 천주산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최근에 기왓장에서 '천주산'이라는 명문이 출토되어 이를 뒷받침하여주고 있다.
북장사는 신라 시대인 833년 진감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며, 1628년(인조 6년) 중창하였는데 창건 이후 이 사찰을 중심으로 수미암, 상련암, 은선암 등의 부속암자가 있었으며 한 때는 600여 승려가 살았을 만큼 큰 국찰이었으나 임진왜란때 병화(兵火)로 완전 소실되었다.
그 후 1624년(인조 2)에 중국에서 온 승려 10여 명이 비로소 중건을 하였고 1650년(효종 1)에 화재로 당우가 소실되자 서묵, 충운, 진일이 중건하였지만 1657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는 등 화재가 잦자 그 원인이 기지(基地)의 남쪽에 화산(火山)이 비치기 때문이라는 설에 의해 염수(鹽水)를 첨두에 묻어 양재(신령에게 빌어서 재앙을 물리침)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북장사가 소재하고 있는 이곳의 지세는 유광하고 계수(溪水)는 청수(淸秀)하여 전차후옹(前遮後옹)하며, 좌읍우공(左揖右控)하여 심히 길지라 한다.
북장사는 한때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20여 동의 대찰이었고, 삼보백물을 갖추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나 지금은 극락보전, 명부전, 삼성각, 일주문, 명월당과 요사가 남아 있다.
북장사의 주요 유물로는 파랑새가 그렸다는 전설이 있는 영산회괘불탱(보물 1278호)이 있다.
이 영산회괘불탱의 크기는 총 높이 1,337cm, 총 폭 807cm이며 화폭은 1,237X778cm 으로, 1688년(숙종 14)에 제작되었으며 마본 채색으로 되어 있다.
또한 북장사에는 상주 인평동 소재 해발 400미터의 우암산 정상 가까이에 흩어져 있던 석탑 부재(옥개석 3, 3층 탑신 1)를 옮겨 원형 대로 복원해 놓은 삼층 석탑(문화재자료 238호, 1991. 3. 25)이 있는데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며, 탑의 높이는 5.45미터, 기단 한변의 길이는 3.27미터이다.
북장사 전경
북장사 극락보전
북장사 영산회괘불탱화(보물1278호)
*연수암(경북 상주)
연수암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흥덕왕 7년(832)에 진감국사가 건립한 장백사의 여러 암자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수암에는 탑과 쌍사자 석등만 남아 1930년부터 토굴암자로 있다가 1940년에 재건되었다.
연수암이란 뜻은 천연의 바위를 중심으로 자리하고 연꽃이 피는 모양 아래 샘물이 항상 나온다고 한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사찰 내에는 삼존불과 십일면 관세음보살입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2002년 12월 20일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또한 연수암에는 대웅전 동쪽의 암벽에 조그맣게 뚫려 있던 석굴을 1999년부터 8년간 뚫어 조성한 높이 5m 길이18m 너비16m의 자연 암반 석굴법당이 있는데 이 석굴법당은 생명의 돌로 불리우는 맥반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면 많은 기를 받음은 물론이고 이 석굴법당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의 가피로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치는 가피를 입어 많은 불자들이 찾아 기도를 올리고 있다.
연수암 전경1
연수암 전경2
*관음선원(경북 상주)
관음선원은 1797년(정조 21)에 우리 나라에서 세워진 최초의 비구니 강원으로서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각 후불탱(보물 923호)을 보존하고 있다.
이는 화주승 '희선'이 1694년(숙종 20)에 북장사 뒷편 상연암에서 제작되었다가 1819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한다.(북장사 사적기)
목각후불탱은 조선 숙종(肅宗) 20년(1694)에 조성된 것으로, 그 예가 드문 귀중한 자료이다. 장방형의 판목 가운데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중심으로 4보살(四菩薩), 2비구(二比丘), 사천왕(四天王), 구름을 타고 모여드는 타방불(他方佛) 등이 고부조(高浮彫)로 새겨진 아미타극락회상(阿彌陀極樂會上) 목각탱(木刻幀)이다.
관음선원 목각후불탱은 네모진 얼굴에 가늘게 뜬 직선적인 눈, 오려 붙인 듯한 코와 입 등에서 이색적인 느낌이 들 만큼 무표정하다.
또한 하체, 상체, 두부(頭部)의 각 부분이 모두 반듯한 사각형적인 형태로 비사실적인 인체 표현이 돋보인다.
이와 같은 특징은 당대의 불상양식을 대변하고 있으며, 그 배치구도에서 당시 불화와 비교할 수 있다.
이처럼 조각을 회화적(繪畵的)으로 표현한 목각후불탱이 새로운 감각으로 조선 후기에 대두한 점은 높이 평가되며, 이 가운데 연대가 올라가는 이 작품은 뛰어난 목조각기술(木彫刻技術)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불화를 그려 족자나 액자형태로 만들어 거는 그림으로, 대개 사찰 전각 안의 본존불 뒤에 위치한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 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 관음전의 주존인 관음보살상 뒷편에 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가로 162㎝, 세로 195㎝이다.사각형의 판목 중앙에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네 보살이 배치되었고 그 주위로 2대 제자인 아난·가섭과 사천왕을 배열한 구도이다.
하단의 연꽃 줄기에서 나온 연꽃이 대좌를 이루어 본존불과 두 보살이 앉아있는 모습이다.본존불은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을 하고 있고 협시보살들은 손에 연꽃가지를 잡거나 합장한 모습이다.
불상들의 얼굴과 신체 등이 모두 네모난 형태로 비사실적 인체 표현이 드러나 있으며 이와 함께 두꺼운 옷에 간략화된 주름은 당대의 불상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목각후불탱은 목각탱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17세기 작품을 대표하는 수준작으로 뛰어난
목조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이 관음선원의 목각탱은 당초
도지정문화재 58호로 지정되었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각탱으로 평가를 받아 보물로 승격되었다.
이 목각탱도 종전까지는 1782년에 조각된 지리산
실상사의 '약수암 후불탱(보물 421호)'으로
알려 졌으나 남장사 관음선원의 목각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관음선원 관음전 전경
관음선원 해탈문
전경
관음선원의 목각탱(보물9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