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 좋은 시

<고지가 바로 저긴데>

칼멘9988 2017. 5. 14. 09:57

 <고지가 바로 저긴데>

- 이은상 -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위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 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피 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해설】

   2수 1편으로 된 연시조. 이 시조는 그 율격이 매우 분방함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온 평시조의 율격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노산의 시조론은 일반적 시조의 율조와는 많이 다르다. 끝 구의 3자 일반론도 여기서는 무시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시조의 한 특징인 ‘율격을 음수율에만 의존하지 않고 낱말이 지니는 호흡에서도 율을 잡는다’라는 이론을 뒷받침해 준다.

   이은상은 민족의 시인이며, 역사의 시인이며, 자연의 시인이다. 자유분방한 시상과 활달한 시어를 구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시 형식을 택하지 않고, 고전적 시 형식인 시조 형식을 고집했고, 조국과 민족의 뜨거운 역사의식과 조국 산천을 두루 편력하여 아름다움을 시화(詩化)했기 때문이다.

   이 시조는 국토 분단과 민족 분열이라는 조국의 역사적 현실을 민족애(民族愛)ㆍ조국애(祖國愛)에 찬 눈으로 바라보면서, 민족 지상의 과업인 조국통일을 간절히 염원한 애국시(愛國詩)이다.

【개관】

▶갈래 : 현대시조, 연시조, 평시조, 서정시, 참여시, 애국시

▶형식 : 자수(字數)를 깨뜨린 파격, 구별 배행 시조

▶제재 : 고지(高地)

▶경향 :

  - 현실에 참여하고 있는 시.

  - 조국에 대한 강한 의지가 충만한 주의시(主意詩)

▶정조(情調) : 강렬한 의지에 찬 조국애(祖國愛)

▶운율 : 3ㆍ4조 4음보 3장 6구의 정형률

▶표현 :

  - 반복법, 은유법, 상징법

  - 직서적(直敍的) 표현에다 약간의 기교가 섞임.

▶사상 :

  - 조국애에 불타는 민족주의 사상.

  - 고난을 감내(堪耐)하려는 의지적ㆍ견인적(堅忍的)인 자세

▶주제 :

  - 조국 통일에의 의지와 염원

  - 민족사의 고난 극복의 의지 

  - 통일을 염원하는 강한 의욕

▶출전 : [자유문학](1956. 5월호)

【구성】

▶첫째 수 : 전제(前提) - 통일에의 의지

   고되고 험난한 운명을 지고, 역사의 가파른 능선을 타고, 낮에는 물론 이 밤에도 허위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한민족이다. 민족의 숙원인 통일이 이루어질 날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는데,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둘째 수 : 다짐 ; 통일에의 염원

   넘어지고 깨어지고, 그리하여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한 조각 민족의 양심만 남는다면 그것을 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 우리는 그처럼 비통한 겨레다. 염원이 이루어지는 날, 민족의 이 더운 핏속에서 환희가 터져 나오는 것을 해방의 당시처럼 다시 보고 싶다.

【시어(詩語)】

<역사의 능선> ; 민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 은유.

<밤> : 민족이 당하는 시대적 비극. 상징.

<고지(高地) : 민족 전체의 희망ㆍ이상ㆍ생명. 상징.

<심장> : 마지막 조국애ㆍ민족애. 상징.

<새는 날> : 소원성취의 날. 조국통일의 날

<핏속에 웃는 모습> : 온갖 수난을 극복하고, 얻은 대가(代價)로 쟁취한 만족한 모습.

【감상】 

   이 시조는 휴전이 협정되고 수도사 서울로 환도되고 나서 통일에의 의지와 비원(悲願)을 노래한 전쟁시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그것이 지나간 뒤의 혼돈을 이 시인은 자기의 형식 위에 우수한 시로 가다듬어 놓았다.

   이 시조는 1954년 그믐날 밤에 쓴 송년시이다. 6ㆍ25 동란으로 인해 민족의 고난을 의지와 투지로 극복하도록 다짐하고 있다. 휴전이 성립된 지 얼마 안 되는 당시 상황이다. 만신창이가 된 민족과 조국을 바라보는 우국지사의 가슴에 감회가 없을 수 없다. 하물며 그것이 섣달 그믐날 밤이라면 말이다. ‘역사의 능선을 타고’는 각박한 역사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부등켜안고 가야만 하는/도 민족의 양심이 살아있어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는 데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고지‘나 ’새는 날‘은 모두 통일을 상징한 말이다.

   민족의 길은 험난하고, 민족과 조국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한 조각의 민족적 양심만 있다면, 그것을 부등켜안고 통일 성취를 위해 끝까지 이 역사적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는 애국시(愛國詩)이다.

   둘째 수 종장 셋째 구의 ‘다시 한 번’을 ‘삼국통일’의 암시라고 푸는 이가 있으나, ‘해방의 환희’로 해석하는 것이 옳겠다. 왜냐 하면, 국토 분단은 해방과 더불어 온 비극이고, 해방의 환희가 아직도 채 가시기 전에 맞이한 비극이었기에 분단과 직결되는 역사적 현실은 해방이고, 통일은 그때 다하지 못한 환희를 다시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 권웅 : <한국의 명시 해설>(보성출판사.1990) -


   이 시의 가장 열쇠가 되는 말은, ‘고지(高地)’와 ‘새는 날’이다. ‘고지’는 우리 온 겨레의 의지를 표상(表象)하는 말로, ‘조국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또는 ‘조국통일’을 뜻하는 우리 민족의 지상목표요, 정복해야 할 정상(頂上)이다.

   ‘새는 날’도 같은 뜻의 말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모든 악조건과 역경(逆境)을 참고 견디면서 반드시 오고야 말 중단 없는 전진을 계속해야 한다고 작자는 굳은 의지를 보인다. 그리고 어떠한 육체적ㆍ정신적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잇더라도 오직 애국ㆍ애족심만 최후의 보루(堡壘)로 간직하고 ‘고지’를 향해 가야만 하는 당위성과 운명성을 내세우면서, 조국통일의 날, 온 민족이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노래하여, 작자의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보인다.

   이 시에서 ‘새는 날’의 이미지는 ‘민족의 수난’ 뒤에 오는 ‘민족의 염원이 이루어진 기쁨’의 뜻뿐만 아니라, ‘죽은 해(밤)’와는 대조적 이미지인 ‘새 해-신년(새는 날)’의 뜻이 겹쳐 신년에의 기대가 은근히 나타나 있거니와, 송년시(送年詩)로서의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새로운 다짐도 볼 수 있다.

   그리고 1연ㆍ2연의 중장(中章)은 ‘∼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로 반복되어 ‘운명성(運命性)’을 강조하면서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표현 기법면에서도 기본 음수율을 바탕으로 하는 기본 형식에 머무르지 않는, 대담한 파격(破格)으로 인한 확대된 운율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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