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송사(경남 함양)
벽송사 전각 배치도
벽송사 전경
벽송사 간월루
벽송사 청허당 - 청허유정 '서산대사'를 기리는 뜻에서 붙여진 당호이다
벽송사 안국당-승방 요사이다.
벽송사의 벽송선원 넓은 마당 양편에는 청허당과 안국당이 쌍둥이처럼 세워져 있는데 이곳은 원래 벽송사의 감자밭이었다.
벽송사 목장승 - 왼쪽 장승이 금호장군(禁護將軍)이고 오른쪽 장승이 호법대장군(護法大將軍)이다.
이 두 장승은 약 80년전에 세워졌다고 하며 전체 높이는 4m 정도 되는데 1m 정도는 땅에 묻혀 있고 썩은 몸통을 지탱하기 위해 1m 정도의 둑을 쌓아 묻었기에 드러나 있는 부분은 2m 정도 된다.
재질은 밤나무이며 몸통은 붉은색이고 눈은 애초에는 횐색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많이 퇴색되어있다.
이 2기의 사찰 장승은 불이문 앞에 수문장 같이 서서 불법을 수호하고 있는데 이런 장승은 경북 예천 용문사의 호법대장군과 삼원대장군에서도 볼 수 있다.
벽송사 삼층석탑
벽송사 도인송(왼쪽)과 미인송(오른쪽) - 도인송의 기운을 받으면 건강해지고, 한가지 소원을 이룬다고 하며 미인송에게 빌면 미인이 된다고 전설이 있다.
벽송사 부도군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소재하고 있는 벽송사(碧松寺)는 고인(古人)이 “운거천상(雲居千上 : 구름 위 하늘 세계) 별유천지(別有千地 : 인간 세상 밖에 따로 있는), 부용정토(芙蓉淨土 :연꽃이 활짝 핀 극락정토에) 조인만대(祖印萬代 :조사의 깨달음을 만대에 이어지리)”라는 말로 표현하였듯이 만고에 수려한 풍광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벽송사는 조선 중종 시대인 1520년 벽송지엄(碧松智嚴)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창건 이후 벽계정심, 벽송지엄, 부용영관, 경성일선, 청허휴정(서산대사), 부휴선수, 송운유정(사명대사), 청매인오, 환성지안, 호암체정, 회암정혜, 경암용윤, 서룡상민 등 수많은 정통 선조사(禪祖師)들이 수행교화한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 사찰이다.
또한 벽송사는 선교겸수한 대 종장들을 109분이나 배출하여 일명 “백팔조사 행화도량”(百八祖師 行化道場)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벽송사를 창건한 벽송선사는 태고보우, 벽계정심 선사로부터 내려오는 심인(心印)을 전해받아 조계정문(曹溪正門)의 정통조사인데 이런 벽송선사는 무자화두(無字話頭)에 의해 무명(無明)을 타파하고 선요(禪要)에 의해 지혜의 병을 떨쳐버렸으니 간화선 수행법(看話正宗)에 의해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은 조선의 첫 번째 조사이다.
그래서 벽송사는 간화선의 제일 조정(朝庭)으로서의 역사를 간직한 한국선불교의 근본 도량이 되는 것이다.
부영영관(芙蓉靈觀)선사는 벽송선사의 뒤를 이어 벽송산문의 제2대 조사에 오른 분으로서 도가 높고 학문이 깊어 배우러 오는 승속제자가 문전성시를 이루었는데, 특히 영호남 일대에 부용선사의 가르침을 받은 선비가 수 없이 많아 “전단향나무를 옮겨 심으니 다른 나무들도 향기가 난다”라고 하는 말이 널리 유행하였다고 할 정도로 부용영관 문하에 수많은 제자가 배출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분이 서산대사라 불리는 청허휴정(靑虛休靜)과 부휴선수(浮休善修)이다.
서산대사는 깨달음을 얻은 뒤 벽송산문의 제3대조사가 되어 지리산 일대에서 행화하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팔도도총섭이 되어 승군을 일으켜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데 전력을 다 하게 된다. 한국 선문의 거장 청허휴정이 벽송조정의 제3대조사라는 사실은 벽송사 사적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서산대사 문하에 사명대사와 청매조사도 이곳 벽송사에서 오도하여 크게 불법을 떨치게 되며 부용영관의 다른 한 사람의 수법제자인 부휴선수선사 또한 벽송사에서 도를 깨닫고 벽송산문의 조사가 되어 오랫동안 지리산에서 행화하였다.
한편 오늘날 한국불교 출가스님의 모두가 서산문파와 부휴문파에 속한다.
서산과 부휴 양대조사가 모두 벽송사 출신이라는 사실은 벽송사가 조선불교의 종가(宗家)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데 그래서 예로부터 벽송사를 가리켜서, “조계조정(曹溪朝庭), 벽송총림(碧松叢林), 선교겸수(禪敎兼修), 간화도량(看話道場)”이라고 불렀다.
이런 벽송사는 1704년(숙종30년)에 환성지안 대사가 벽송사에 주석하며 도량을 크게 중수하였는데 이때에 불당, 법당, 선당, 강당, 요사 등 30여동의 전각이 즐비하였으며, 상주하는 스님이 300여명에 이르렀고, 부속 암자는 10여개가 넘었다고 하며 금대암에 선원이 개설되어 수선납자가 운집하고, 벽송사 본당에는 강원이 개설되어 근세 일제강점기까지 지속되어 근 300년 동안 조선불교 제일의 총림이 이루어져 선교겸수(禪敎兼修)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선교를 겸한 대종장들이 벽송사에 수선안거하면서 후학들을 지도하게 되니, 강당을 거쳐 간 강주(講主)스님 만도 약 100인이나 되니 학인과 납자의 수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근대에 선지식이신 경허선사도 벽송사에 주설하며 서룡선사 행적기록을 집필하였으며 특히 벽송사 강원의 마지막 강주를 역임한 초월동조(初月東照)대사는 일제 강점기에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옥고를 치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이렇듯 창건 이후 400여년간 지속되어 온 한국불교 최고의 조정인 벽송사는 일제 조선불교 말살정책으로 인해의 사세도 기울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전쟁으로 시작된 지리산 빨치산들의 암약(당시 벽송사는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됨)으로 말미암아 국군에 의해 방화되어 완전 소실되는 슬픈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구한 원응(久閒元應)대사의 원력에 의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옛날 선종의 최고 조정에 벽송선원을 낙성하여 을유년(2005년) 하안거에 개원하여 눈푸른 납자들이 수선정진할 수 있는 선찰종가(禪刹宗家)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런 벽송사에는 신라 양식을 계승한 3층 석탑(보물 제 474호)과 경남 유형문화재인 벽송선사진영. 경암집 책판.묘법연화경 책판과 경남 민속자료 제2회인 목장승의 문화재가 보존되고 있다.
특히 목장승은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깃들어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선방뒤 탑전앞에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서 있는“도인송(道人松)”과 “미인송(美人松)”의 전설 또한 유명하다.
예로부터 목장승에 기원하면 애정이 돈독해지고, 도인송의 기운을 받으면 건강을 이루고 한가지 소원이 이루어지며, 미인송에 기원하면 미인이 된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그리고 벽송사 선방에서 도인이 유래없이 많이 나와서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고 한다.
서암정사 입구를 알리는 석주
서암정사 입구 석주 옆에 조성되어 있는 마애사천왕상
서암정사는 한국전란으로 황폐해진 벽송사을 재건한 원응 스님이 1989년에 이곳으로 옮겨온 뒤창건한 사찰이다.
원응 스님은 화엄경 금자사경을 완성하고 주위의 자연석 암반위에 대방광문(大方廣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극락전(極樂殿 : 아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무수한 불보살이 조각된 부처님의 이상 세계 모습), 광명운대(光明雲臺 : 구름 일듯이 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는 곳), 사자굴(스님들의 수행장소)등을 조각하여 서암정사를 조성하였는데 그 화려함과 정교함과 웅장함이 지리산의 산세를 배경으로 수려한 자연자원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과히 장관을 이루고 있어 생전에 볼 수 있는 극락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서암정사는 바위와 바위사이를 철판으로 길을 만들어 연결해서 다니고 있고 스님들이 바위굴에서 수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곳이다.
서암정사는 사찰 입구에 불교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대방광문이 있고 바위에 조각된 사천 왕상을 지나 도량안으로 들어서면 아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극락세계를 형상화한 석굴법당이 있고, 도량 위편에는 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는 광명운대, 그리고 스님들의 수행장소인 사자굴등이 있으며 곳곳의 암반에 수많은 불보살상이 조성되어 있어 연중 많은 탐방객들이 찾고 있는 신흥명찰이다.
대방광문 -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서암정사 안양문 입구 전경
서암정사 석굴 극락전의 내부 전경들
서암정사의 노천 마애불보살
서암정사 용암단
서암정사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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