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사찰, 건축물

덕숭총림 수덕사

칼멘9988 2013. 8. 26. 08:11

 

 

 

 

 

 

 

 

 

 

 

덕숭총림 수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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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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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사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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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사천왕문의 사천왕상

 

 

창건설화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고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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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대웅전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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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경내 전경

 

 

 

 

창건과 중창

 

 

문헌에 나타난 백제 사찰로는 흥륜사(興輪寺), 왕흥사(王興寺), 칠악사(漆岳寺), 수덕사(修德寺), 사자사(師子寺),

미륵사(彌勒寺), 제석정사(帝釋精寺) 등 12개 사찰이 전하지만 수덕사만이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백제사찰인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 재위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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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명부전

또한 수덕사 경내 옛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와당은 백제시대 창건설을 방증할 수 있는 자료이다.

문헌에 수덕사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와 '속고승전(續高僧傳)'으로 백제의 고승 혜현(惠現)

이 수덕사에서 주석하며 법화경(法華經)을 지송하고 삼론(三論)을 강(講)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수덕사의 사격(寺格)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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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법고각의 법고와 목어

 

고려시대의 수덕사는 관련 문헌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으나 다행히도 충렬왕 34년

(1308)에 건축된 대웅전과 통일신라말기 양식을 모방한 삼층석탑, 수덕사 출토 고려자기, 수덕사

 출토 와당 등 여러 유물이 남아있어 대가람으로서 융성하였던 면모를 볼 수 있다.

 

“재덕숭산 사유취적불운이루(在德崇山 寺有翠積拂雲二樓)“라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수덕사는 대웅전

이외에 2개의 누각이 있을 만큼 대가람의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수덕사 대웅전은 다행히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37~40년 보수 당시 발견된 대웅전 동측 내부 전면에 기록된 단청개칠기(丹靑改漆記)에 의하면 중종 23년(1528)에 대웅전 색채보수, 영조 27년(1751), 영조 46년(1770)에 대웅전

보수, 순조 3년(1803)에 대웅전 후면의 부연(浮椽)보수와 풍판(風板)의 개수 등 4차례 대웅전 보수가 있었음을 알수 있다.

1673년 조성된 수덕사 괘불과 18세기 제작된 수덕사 소종은 조선후기 수덕사의 꾸준한 불사활동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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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의 미륵불

 

 

이후 1962년 비구, 대처 통합으로 대한불교 조계종 비상총회에서는 새로운 종헌(宗憲)을 의결하였고,

그 해 3월 25일 공포된 종헌에 의하여 수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본사로 승격하였으며,

 현재 수덕사는 충남 일대의 50여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1984.11.29. 중앙종회의 의결로 수덕사는 근대선풍을 진작한 선지종찰임이 인정되어 총림(叢林)으로

승격되었으며 이름을 덕숭총림(德崇叢林)이라 하고 초대 방장에 혜암스님을 추대하였다.

이렇게 수덕사가 덕숭총림으로 승격한 것은 기존의 교구본사로서의 위상에 종합수도장의 역할까지

겸비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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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의 황하정루

 

 

 

 

덕숭산 내에는 정혜사(定慧寺)능인선원(能仁禪院) 에서는 수십여명의 선객들이 참선에 매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선원인 견성암(見性庵 )에서는 백 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밤낮으로

화두에 여념이 없다. 또한 매달 음력 그믐날에는 사부대중들이 모여 철야정진을 통한 선수행(禪修行)을 실천하고,

여름철에는 선실천 수련대회를 갖는 등 선의 생활화와 선풍진작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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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사에서 내려다 본 수덕사 전경

 

과거 강원(講院)을 운영했던 전통을 되살리고, 부처님의 법을 후학에게 전수할 목적으로

1996(불기 2540)년 개설된 수덕사 승가대학(수덕사 강원)에서는 여러 학인들이 청강과 강론에 전력하고 있다.

수덕사 승가대학은 불교전통방식의 수업내용과 더불어 현실에 맞는 불교사 및 외전(外典)을 겸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교구 신도회를 비롯하여 수덕사 신도회, 선정회, 일화공덕회, 무이회, 관음회, 우담바라합창단 및

인터넷모임인 수덕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각 단체들이 수덕사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수덕사는 이들을 중심으로 매달 음역 초하루와 보름에 법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밖에도 수덕사는 일반 불자 뿐만 아니라 군불자, 재소자와 공무원, 운전불자 등의 포교에 노력하고 있으며,

교양불교대학을 운영하여 불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도 불교를 알기 쉽게 널리 알리고,

지역사회의 정신문화중심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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